전국민이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한다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동전 던지기 대회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규칙은 간단하다. 5,000만 명 대한민국 국민은 각자 1만원을 걸고 동전을 던진다. 동전 앞뒷면의 결과를 예상하여 맞힌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부터 1만원을 받는다. 예상이 빗나간 사람은 그날 탈락하고, 그다음 날은 전일 승자만 모여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걸고 다시 동전 던지기를 한다. 이렇게 10일간 동전 던지기 10번 반복하면 남은 생존자의 수는 48,828명, 약 5만명이 된다. 이들의 손에 쥐어진 돈은 1,024만원이 된다. 5만명의 승자는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동전 던지는 법에 대해 전문가인양 설교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할 것이다.

게임을 더 진행해 총 20번 동전을 던지게 되었다. 남은 사람은 단 48명. 이들이 각자 가지게 되는 돈은 104억 8,576만 원이 된다. 남은 48명은 이제 분별력을 잃게 된다. “동전 던지기를 위한 101가지 기술’, “매일 30초 투자로 1만원에서 100억 만들기”과 같은 책을 쓸지도 모른다. 동전 던지기 기술을 알려주는 수백만원 짜리 강연을 열고 전국을 순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생각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숭이 5,000만 마리로 같은 실험했더라도 48마리의 승자가 생긴다. 48명의 승자는 그저 운으로 탄생했다.” 맞는 말이다. 몇 번의 실험을 반복하더라도 20번째에는 48마리의 원숭이가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원숭이 48마리 중에 20마리가 같은 동물원 출신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동물원에는 동전 던지기를 잘하게 하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놀랍게도 주식 시장에는 이와 똑같은 사례가 있다.
S&P500를 이겨라
S&P 다우존스 인디시즈에서는 매년 SPIVA(S&P Indices Versus Active) 보고서를 발행한다. 이 보고서는 액티브 펀드(시장 평균을 이기기 위해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종목을 고르는 펀드)와 패시브 펀드(시장 평균을 추종하는 펀드)의 성과를 비교한다. 1년을 놓고 보면 액티브 펀드의 약 절반 정도가 시장 평균(S&P 500)을 이긴다. 하지만 15년 장기간을 비교해보면 액티브 펀드의 85% ~ 90%가 시장 평균 수익률을 밑돈다.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으며, 막대한 데이터와 슈퍼컴퓨터, 기업 네트워크를 갖춘 월스트리트의 전문가 집단조차 10명 중 9명은 S&P500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7년, 워런 버핏은 헤지펀드 '프로테제 파트너스'와 100만 달러 내기를 했다. 버핏은 S&P 500 인덱스 펀드에 투자했고, 헤지펀드 측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5개의 펀드를 선택했다. 10년 뒤 결과는? 버핏의 인덱스 펀드는 연평균 7.1%의 수익률을 올린 반면, 헤지펀드는 연평균 2.2%에 그쳤다. 수많은 분석과 잦은 매매가 오히려 비용만 발생시키고 시장 평균조차 따라가지 못함을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모르면 그냥 S&P500만 사라’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워런 버핏의 내기 결과와 SPIVA 보고서는, 수많은 분석과 막대한 자본을 굴리는 전문가조차 결국 '운에 기대어 동전을 던지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사실을 보여준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주식 시장이라는 이 거대한 동전 던지기 대회에서, 단순한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같은 동물원 출신'의 원숭이들이 과연 존재할까?
놀랍게도 존재한다. 1년, 2년의 짧은 운이 아니라 수십 년간 꾸준히 시장 평균을 압도해 온 극소수의 승자들. 이들의 출신을 추적해 보면 하나의 뿌리에 도달한다.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다.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의 제자거나, 벤저민 그레이엄의 회사(그레이엄-뉴먼)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벤저민 그레이엄의 사고 체계에 근간하여 투자한 투자자의 실적을 살펴보면, 이들 중 상당 수가 시장 평균 수익률을 꾸준히 상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도 여기에 포함된다.

‘현명한 투자자’는 이런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자, 워런 버핏이 평생 동안 투자의 원칙으로 삼은 교과서이자, 가치투자의 성경과 같다.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가치투자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의욕 넘치게 책을 구매해 읽어보았지만 현대 투자자가 읽기엔 시차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초판은 1949년이고, 최종 개정은 1973년에 이루어졌다(제4개정판).
책을 읽어보면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조회할 수 있는 데이터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복잡하게 찾아낸다던가, 철도·항공과 같은 공업주 중심의 분석이 자주 등장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서술이 딱딱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659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다 읽기 매우 힘들었다.
그럼에도 다 읽었다. 현대 투자자가 이 책에서 건져야 할 핵심은 딱 두 가지며, 나머지는 건너뛰어도 무방할 것 같다.
1. 미스터 마켓(Mr. Market)

첫 번째는 책 제8장에 등장하는 시장의 변동성(미스터 마켓, Mr. Market) 개념이다. 그레이엄은 주식 시장을 매일 나를 찾아와 거래를 제안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미스터 마켓)'로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미스터 마켓, 그러니까 ‘마켓씨’는 매일 아침 나를 찾아와, 내가 가진 주식을 얼마에 사겠다거나 자신의 지분을 얼마에 팔겠다고 가격을 제시한다. 그런데 마켓씨는 심각한 조울증 환자이다. 시장 전망이 밝아 보여 기분이 아주 좋을 때(강세장)는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여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른다. 반대로 온갖 악재로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약세장)는 기업의 미래가 암울해 보여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제시한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마켓씨가 좋은 기업을 헐값에 던질 때는 매수를 하고, 비싼 가격에 사겠다고 할 때 매도를 할 것이다. ‘환희에 팔고 공포에 사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이다. 모든 정보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적이다. 이때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발생한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 괴리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2.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두 번째는 제20장의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이다. 안전마진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내재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입하는 완충재를 말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10,000원을 6,000원에 사라’는 것이다. 이 개념이 이해가 가는가? 만약 A라는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가 1조원이라고 치자. 그리고 총 1억 주를 발행하였다. 따라서 한 주의 가치는 10,000원이 되어야 한다. 근데 지금 주식 시장에서 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고민 없이 구매해야 한다. 회사 A의 주가는 언젠가 10,000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럼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는데?’ 책에서는 여러 방법을 설명하고는 있긴 하나 안타깝게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마법의 공식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현대 주식시장에는 맞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다행히도 워런 버핏같은 후대 가치투자자가 정리한 내재가치 평가법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설명하기엔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은 고전이다. 경제학의 태동에 ‘국부론’이 있다면, 가치투자의 태동에는 ‘현명한 투자자’가 있다. 하지만 경제학을 배우기 위해 국부론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경제학을 배우려면 핵심을 잘 정리한 맨큐의 경제학과 같은 책이 훨씬 좋다.
가치투자를 훨씬 쉽고 명확하게 시작하고 싶다면 ‘현명한 투자자’보다는 하워드 막스의 ‘투자에 대한 생각’이 훨씬 좋은 선택이다. 가치투자의 핵심만 깔끔하게 정제해 놓았고 초보 투자자가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